천안 광덕사
태화산 광덕사 일주문
광덕산이 주산이 아니고 태화산이 주산인가 보다.
광덕사 호도나무 (천연기념물 제398호)
수령 약 400년, 높이는 18.2m로
고려 충렬왕 16년(192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어린 호도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라 부르고 있다.
호도전래사적비와 호도를 처음 가져왔다는 류청신의 공덕비
광덕사 대웅전
광덕사는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창건 되었지만
지금의 대웅전은 1872년(고종 9년)에 중건했으며,
보수과정에서 주춧돌이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이란 것이 확인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 있는 쌍사자석
사자를 닮지는 않았지만 익살스럽다.(조선시대로 추정)
광덕사 삼층석탑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탑
운초 김부용은 조선시대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 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명기로 이름을 날린 여류시인이다.
평안남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4세 때 글을 배우고 10세 때 사서삼경까지 통달했지만
조실부모하여 퇴기의 수양딸로 들어가 양엄마의 뒤를 이어 기생이 되었다고 한다.
부용이 19세 되던 해 천안 태생의 연천 김이양 대감이 평안감사로 부임하여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김이양의 나이 는 77세.
근 60에 가까운 나이차를 무시하고 부용이 먼저 거두어 달라고 했다 한다.
김이양 대감이 자릴 옮겨간 후 잠시 이별하였다가
김이양 대감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 김이양 대감이 91세 되던 해 까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부용이 이곳에 묻힌 연유는 김이양 대감이 광덕사에 영면하여
부용이 김이양 대감을 바라보는 곳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해서 타향인 이곳에 묻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근에 세워진 5층석탑으로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호서제일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