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浮石寺)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소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년)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종조(宗祖)이신
의상국사(義湘國師)께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이다.
1926년 해체(解體) 보수(補修)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高麗) 초기에 무량수전(無量壽殿)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恭愍王) 7년(1358년) 적(敵)의 병화(兵火)를 당하여 우왕(禑王) 2년(1376년)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1377년)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木造建物) 중 하나이며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 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20호),
삼층석탑(三層石塔: 보물 제249호),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255호)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 국보 제45호),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고려 각판(刻板): 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圓融國師碑) 및 2기의 삼층석탑 등이 있다.
부석사 안양루(浮石寺安養樓)
무량수전 맞은 편에 있는 누각이다.
2단으로 쌓은 석축 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 정면에는 '안양루', 뒷면에는 '안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양'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봉황산 부석사
안양루의 뒷면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본전으로 보처없이 화엄도량에 서방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신라형식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제17호)
통일신라시대 일반형 석등으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팔각을 기본형으로 삼고 네모난 지대석 측면에는 안상이 2개씩 배치되고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 기둥을 받치고 있다.
팔각의 가운데 기둥은 알맞은 높이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 사면에 도드라지게 새긴 보살상이나 연꽃무늬 등은 우수한 조각으로 손꼽히고 있다.
무량수전에서 바라본 안양루
부석(浮石)
의상대사와 선묘 아가씨의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 문무왕1년에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 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생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 '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부석사 삼층석탑 (보물 제249호)
선묘각
선묘
조사당(祖師堂)
국보 제19호
무량수전 우측 위쪽에 위치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고승대덕의 영정을 모시는 곳이다.
조사당 앞에는 선비화(仙扉花)로 불리우는 골담초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둔 것이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 선비화의 잎이나 꽃을 달여서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 나무를 훼손하는 일이 심하여
지금은 철망 속에 가두어 보호하고 있다.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 사이에 연꽃잎을 장식한 원형의 간대석(杆臺石)이 놓여져 있다.
은행나무 가로수
'♡내 영혼의 쉼터♡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가천 다랭이 마을 (0) | 2013.05.31 |
---|---|
태백산 사고(史庫)지인 봉화 각화사 (0) | 2013.04.16 |
영주 소수서원 (0) | 2013.04.15 |
영주 순흥 봉도각(蓬島閣) (0) | 2013.04.15 |
고즈넉한 안동 봉정사 봄의 향기 (0) | 2013.04.15 |